올해로 125회를 맞은 2025년 노벨상 시상식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10월 6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 화학, 문학, 평화, 경제학상까지 6개 부문의 주인공들이 차례로 공개되며 인류의 지식과 평화를 향한 여정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수상자들에게는 상금 1100만 크로나와 함께 메달, 증서가 수여되며 시상식은 전통적으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을 낀 ‘노벨 주간’에 스웨덴 스톡홀롬과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상 부문)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생리의학상 – 인체 면역의 비밀을 풀어낸 발견
올해 생리의학상은 메리 브랑코(미국), 프레드 램즈델(미국), 사카구치 시몬(일본) 3인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들은 면역체계의 경비병이라 불리는 ‘조절 T세포’의 존재를 밝혀내 암과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면역관용은 중추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했을 때, 사카구치는 과감히 새로운 개념인 ‘말초 면역관용’을 제시하며 면역세포가 스스로를 공격하지 않도록 조절되는 과정을 규명했습니다.
이후 브랑코와 램즈델은 Foxp3 유전자가 자가면역질환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밝혀냈고, 2003년 사카구치는 이 유전자가 조절 T세포 발달의 핵심임을 확인했습니다. 이 연구는 면역학의 새로운 장을 연 업적으로 평가받으며, 현재 조절 T세포를 활용한 치료제 개발은 임상 단계에 도달해 있습니다. 인체의 복잡한 방어 시스템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죠.
물리학상 – 눈에 보이는 세계로 확장된 양자 현상
존 클라크, 미셸 데보레, 존 마티니스 세 명의 미국 과학자가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이들은 초전도 회로를 이용한 거시적 양자 터널링과 에너지 양자화 현상을 관측해 미시세계의 법칙이 현실 세계에서도 구현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양자 터널링은 전자가 통과할 수 없는 장벽을 넘어가는 현상으로,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 수준에서만 가능하다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세 과학자는 1980년대 중반, 초전도체로 구성된 전자회로—즉, 조셉슨 접합(Josephson junction)—을 통해 이 현상을 실제 회로에서 관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들의 연구는 양자컴퓨터의 기본 단위 ‘큐비트(Qubit)’ 구현의 기초가 되었으며, 오늘날 구글과 IBM이 선도하는 차세대 컴퓨팅 기술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유엔이 2025년을 ‘세계 양자과학 및 기술의 해(IYQ)’로 지정한 것도 이런 과학적 진보를 기념하기 위함입니다.
화학상 – 금속·유기 골격체(MOF)의 혁신
화학상은 기타가와 스스무(일본), 리처드 롭슨(영국), 오마르 M. 야기(미국)에게 수여되었습니다. 이들은 혁신적 다공성 물질인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개발해 신소재 화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MOF는 금속 이온과 유기 분자가 결합해 만들어지는 3차원 구조체로, 공간 크기와 화학적 특성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물질은 이산화탄소 포집, 수중 유해물질 제거, 가스 저장 등 환경 문제 해결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롭슨은 1989년 3차원 구조의 개념을 처음 제시했고, 기타가와는 MOF 내부의 기체 이동성과 구조적 유연성을 입증했습니다. 야기는 ‘MOF’라는 용어를 명명하며, 구체적인 설계 원리를 확립해 해당 분야를 산업적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의 연구가 인류가 직면한 환경 위기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문학상 – 예술로 절망을 말하다
올해 문학상은 헝가리의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László Krasznahorkai)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는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 예술의 힘을 재확인한 강렬하고 선구적인 작품”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라슬로는 1985년 데뷔작 《사탄탱고》로 문단에 등장했으며, 1989년 《저항의 멜랑콜리》를 통해 인간의 절망과 부조리를 철학적으로 형상화한 작가로 평가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중부유럽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종말론적 상상력과 문체적 난해함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2015년 그는 헝가리 작가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세계 문단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습니다. 이번 노벨상 수상은 2002년 케르테스 임레 이후 23년 만에 헝가리 문학의 쾌거로 기록됩니다.
평화상과 경제학상 – 아직 발표되지 않은 마지막 장
평화상과 경제학상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평화상은 10월 10일, 경제학상은 13일에 발표될 예정인데요. 올해는 특히 국제 분쟁과 환경 위기가 심화된 만큼, ‘지속 가능한 평화’와 ‘기후 정의’에 기여한 인물 또는 단체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편, 노벨 평화상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으며, 2024년에는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2025년의 남은 부문에서도 한국인 수상자가 탄생할 수 있을지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향한 지식의 유산 올해 노벨상은 단순한 업적의 나열이 아니라, 각 분야에서 인류의 삶을 더 낫게 만들려는 도전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면역의 비밀을 밝힌 생리학자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현실로 끌어낸 물리학자들, 그리고 새로운 물질로 지구의 미래를 고민한 화학자들까지—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이라는 공통의 목표로 나아가고 있죠. 과학과 예술, 그리고 평화를 향한 여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해의 노벨상은 우리에게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합니다.